-(一八六一~一九○七) 本貫喬桐、字國贊、號鶴岡、始祖璫의 二十一世孫、父炳圭、全北淳昌出身- 어렸을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의 뜻을 어긴 적이 없었으며 十四세때 모친이 병들어 눕게 되자 정성껏 시탕했으나 백약이 무효하여 세상을 떠나매 치상함이 어른을 방불케 하였다. 그리하여 모친을 모시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여겨 부친을 극진히 섬겨 三十여년동안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부친에게 문안을 드리고 집에서 밖에 출입할 때에는 반드시 사유를 고하였으며 음식도 구미에 맞춰서 지성으로 봉양하였다. 부친이 병들어 눕게 되자 백방으로 좋다는 약을 모두 구하여 시탕하였으나 효험을 보지 못하고 병세가 날로 악화되어가자 손가락을 잘라 흐르는 피를 드려 三일동안 연명케 했으나 끝내 세상을 떠났다. 그는 부친의 유해를 선산에 안장하고 三년동안 조석으로 성묘하여 명복을 빌었다. 해동대학원에서 표창장을 수여하고 예조에서 포상을 수여하였으며 순창읍 남산대 어귀에 효자정문이 세워졌다. 손자 재권(在權)이 순창군 순창면 남계리에 살고 있다.〔문헌:순창군지〕